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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기증인과 이식인 깜짝 만남 "좋아보여요" "고마움 못 잊어

 

신장기증인과 이식인 깜짝 만남 "좋아보여요" "고마움 못 잊어"

 

 

[경향신문] ㆍ9월9일 장기기증의날 맞아 ‘기증운동본부’ 통해 성사
ㆍ신장 나눈 마음 기억하려“농장 이름도 기증번호로” 18년 투석생활 끝에 행운“생면부지 타인에…” 눈물 국내 이식대기자 2만9525명 기증자는 2885명에 그쳐“홍보·교류의 장 확대해야 저조한 장기기증 활성화”

신장을 기증한 김충효씨(왼쪽)가 지난달 20일 경기 화성시 자신의 ‘949 농장’에서 신장을 이식받은 홍모씨와 손잡으며 인사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이거 어떻게 먹는 거예요?” “껍질째 다 먹는 거예요. 드셔보세요~.” 김충효씨(49)가 홍모씨에게 손수 재배한 무화과 열매를 건넸다. 김씨는 홍씨에게 신장을 기증했다. 생면부지 타인에게 신장을 기증한 949번째(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집계) 인물이다. 김씨는 경기도 자신의 농장 이름도 ‘949 농장’이라 지었다. 신장을 나눈 마음을 기억하며 살고 싶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지난달 20일 농장에서 만났다. 2014년 12월24일 김씨가 홍씨에게 신장을 기증하고 병원에서 함께 사진을 찍은 뒤 처음이다. 서로 어떤 사람인지, 잘 지내는지 알 수 없었다. 서로를 궁금해했다.

한국에선 기증인과 이식인 간 만남이 흔치 않다. 두 사람을 연결한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가 이날 만남을 주선했다. 김씨가 지난 7월 자신이 재배한 단호박을 본부 직원들과 홍씨에게 보낸 게 계기가 됐다. 홍씨는 답례하고 싶었다. 이날 김씨에게 줄 떡을 쪄 왔다. 직원들은 김씨에게 홍씨가 함께 온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깜짝 만남’이었다.

“그때 사진을 아직도 갖고 있어요. 깜짝 놀랐어요. 그때랑 너무 달라서…. 그분이 아니신 것 같은데?” 김씨가 홍씨에게 장난스레 말했다. 당시 홍씨는 환자였다. 18년간 신장병으로 투석치료를 받았다. 홍씨는 당시 투석치료를 오래 받은 탓에 얼굴이 까맸다고 했다. 이날 홍씨 얼굴은 환해 보였다.

홍씨는 옷가게를 운영하던 1998년 신장병을 앓았다. 홍씨는 가족에게 신장이식을 해달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말도 못 꺼냈죠. 투석받는 사람은 말 못해요. 금기 사항이랄까. 가족들이 부담스러워할 것 아니에요.” 홍씨는 이틀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4시간씩 투석치료를 받았다. 일반 주삿바늘보다 16배 두꺼운 바늘이 팔에 꽂혔다. 옷가게도 접었다. 아픈 홍씨를 받아주는 일터는 없었다. 간간이 이웃집 일을 도우며 생활비와 치료비를 겨우 마련했다.

그렇게 홀로 살아온 세월이 18년이다. 2014년 말 홍씨는 처음으로 교회 새벽기도를 나갔다. ‘이젠 포기하고 싶어요. 이렇게 산다면 그만 살게 해주세요.’ 일주일 뒤 그에게 기증인을 찾았다는 연락이 왔다. “그때 심정을 생각하면 말도 못하죠.” 홍씨가 눈물을 훔쳤다. 생면부지 타인에게 신장을 이식받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드문 일이다. 이식 뒤 홍씨는 매일 아침 바나나를 먹는다고 한다. “투석할 땐 먹지 못했죠. 그게 한이 돼서요.”

홍씨는 이날 김씨에게 감사의 말을 이렇게 전했다. “고맙다는 말로는 표현을 못하겠습니다.” 지금 홍씨는 타인을 도우며 산다. 이식을 받은 뒤부터 한 구청에서 장애인의 대중교통 이동을 돕는 일을 시작했다. 홍씨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김씨가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의 뜻을 잇고 싶어서 신장이식을 결심했다. 건강에 큰 문제가 없던 아내는 2013년 6월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졌다. 병원은 아내가 뇌사 상태에 빠질 것이라고 했다. 김씨는 가족과 상의 끝에 아내의 장기를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로 했다. 그렇게 아내는 5명의 삶을 살렸다. “세 아이와 제게 위로가 되는 건 아내가 이식인 5명의 삶을 통해 살아 있다는 거예요.” 김씨는 “기증을 하고 난 뒤 자신의 몸에 대해 신경을 쓰게 돼 오히려 건강해졌다”며 웃었다.

김씨는 말했다. “이식인 분을 매일 생각했어요.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신지를. 오늘 뵀으니 앞으로 기회가 되면 더 봬야죠. 이런 만남이 활성화되면 많은 분이 장기기증에 관심을 두고 참여하지 않을까 해요.”

오는 9일은 23번째 장기기증의 날이다. 여전히 장기기증은 드물다. 장기기증 보편화 정도는 인구 100만명당 뇌사장기기증자 수가 얼마인지로 판단한다. ‘국제장기기증·이식 등록기구’에 따르면 2018년 현재 가장 장기기증이 활발한 나라는 스페인(100만명당 48명)이다. 미국 33.2명, 프랑스 29.7명, 영국 24.5명이 뒤를 잇는다. 한국은 8.7명으로 멕시코, 일본과 함께 한 자릿수다. 장기를 받으려는 사람은 많은데 줄 사람은 부족하다.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센터 통계를 보면 2018년 장기기증자는 2885명인데, 올해 9월4일 기준 이식대기자는 2만9525명이다. 수요가 공급보다 약 10배 많은 셈이다.

장기기증이 저조한 것은 부정적 인식과 홍보 부족, 제도 미비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미국은 장기기증 등록이 운전면허증 취득 때 이뤄진다. 취득자의 58%가 참여한다. 프랑스는 ‘장기기증 거부자’를 모집하는 ‘옵트 아웃(거부 선택)’ 방식이다. 명시적으로 거부하지 않는 프랑스 시민은 모두 장기기증 등록자가 되는 셈이다. 기증인과 이식인 간 만남이 드문 것도 장기기증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한국에선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에 따라 기증인과 이식인의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기증인 측과 이식인 측 간에 금전이 오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미국은 기증인과 이식인 간 서신 교류를 보장한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관계자는 “장기기증을 활성화하려면 홍보와 함께 기증인과 이식인 간 교류를 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갖추는 게 필요하다”며 “기관 중재하에 서신 교류 등을 할 수 있게 한다면 장기기증이 주는 감동을 대중에게 전달하고, 장기기증을 활발히 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보라 기자 purple@kyunghyang.com